경남 사천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남학생이 여교사 텀블러에 체액(정액)을 넣는 사건이 발생했다.
26일 경남교육청과 경찰 등에 따르면 계약직 여성 교사 A 씨는 지난해 9월 사천의 한 고교에서 남학생 40명이 머무는 기숙사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하던 중 화장실에 가려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 사이 남학생 B군이 A 씨가 두고 간 텀블러에 자신의 정액을 넣었다. A 씨는 지난 20일 이 같은 피해 내용을 국민신문고에 올렸으며 최근 B군을 경찰에 고소했다.
A씨는 사건 직후 나흘간 병가를 썼다. 가해 학생은 학교 선도위원회에서 근신과 특별교육 이수 처분을 받고 2주간 등교하지 못했다.
A 씨는 “애초 마음 한구석에 교사라는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가해 학생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만한 고소나 퇴학 등 처분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면서 “원했던 건 학교와 학생의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였지만 가해자와 그 부모에게 직접적인 사과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학교는 자신들에게 피해가 올까 소극적인 태도로 사건을 덮으려 했다”라고 주장했다.
해당 사건은 A씨 주거지인 경기도 인근 경찰서에 접수된 상태다. A 씨는 지난 2월 말 해당 학교와 계약이 종료됐다.
학교 측은 이와 관련해 사건 당시 A씨와 B군의 분리 조치가 이뤄졌고, A 씨가 학생에 대한 선처를 원해 자체적으로 사건을 처리했다는 입장이다. B군은 학교에서 특별교육 이수 처분 등을 받고 2주간 등교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남교육청 측은 "산재 처리를 할지, 학교 측 대응이 소홀한 점에 절차상 문제 제기인지 의사를 확인했다"며 "실비·병원비·상담비 지원 등 성폭력 피해 회복 프로그램이 있다고 안내했는데, 산재 처리를 하면 중복 지원이 안 되기 때문에 만나서 자세히 안내하겠다고 했고 A 씨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해명했다.
한편 여성 초임 계약직 교사가 남학생 기숙사 감독을 맡았다는 점에 대해 학교 측은 "A씨가 기숙사 감독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고 다른 남자 교사와 함께 2명이 감독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A 씨는 "다른 남자 교사는 헬스 수업 때문에 주로 1층에 있었고, 나 혼자서 2~4층 감독을 맡아야 했다"라고 반박했다.
이 같은 '정액 테러' 사건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 지난달 충남 서산의 한 스터디카페에서는 한 남성이 공부를 하던 여고생의 머리에 정액을 묻히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조사중이다.
- 2022년 3월에는 40대 남성이 이웃집 현관문에 정액이 들어 있는 콘돔을 걸어두는 사건이 벌어졌다.
- 2021년 3월에는 서울 지하철역에서 자신의 정액이 담긴 콘돔을 피해자의 코트 주머니에 넣은 남성과 가방에 넣은 남성이 각각 기소됐다.
한편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21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미비점을 지적하며 조속한 개정안 처리를 촉구한 바 있다. 현재 사람이 아닌 물건에 가해지는 ‘체액 테러’도 형사처벌이 가능한 성범죄에 해당하도록 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발의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백 의원은 “동료 텀블러에 수차례 자신의 정액을 넣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에게 법원이 3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하는 등 법원이 가해자에게 ‘강제추행’ 등 성범죄 조항이 아닌 ‘재물손괴’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한국 법원의 판결에 영국 가디언지 등 외신들은 “한국에서는 체액 테러 피의자에게 성범죄 혐의를 적용할 법 조항이 없다”면서 “한국은 성추행과 성폭력처럼 직접적인 접촉과 협박이 있어야만 성범죄로 간주한다”라고 언급했다.
미국 인터넷 매체 바이스도 미흡한 제도로 인해 한국 여성들이 체액 테러를 비롯한 각종 성범죄에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다.